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우마 호세프 (문단 편집) == 대통령 당선 이전 == 아버지 페드루 후세프(Pedro Rouseff, 1900~1962)는 [[불가리아인]]으로 불가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탄압을 받아서 1929년 프랑스를 거쳐 브라질로 망명, 이후 정착한 사람이다.[* 이름은 포르투갈식으로, 성은 프랑스식으로 바꿨다. 원래 이름은 페터르 스테파노프 루세프(Петър Стефанов Русев).][* 이 시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망명했는데 아들인 류벤카멘(Любен-Камен Петров Русев, 1930~2007)이 아버지가 불가리아를 떠난 이후 태어났다. 즉 호세프의 이복오빠. 직업은 엔지니어였다고. 이후 호세프가 연로한 그를 위해 그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재정지원을 해줘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교사였던 지우마 다 시우바를 만나 호세프를 비롯해 3남매를 봤다. 오빠 이고르는 변호사였다. 여동생이 하나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2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다. 수감 당시 그녀는 20살 남짓한 학생이었으며, 20여 일 간의 극심한 고문을 버티는 등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고문으로 턱이 부서지는 골절상을 입을 정도였다.] 석방된 이후 히우그란지두술 연방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민주화 이후에 정계에 입문하였고, 90년대 말에 노동자당에 입당하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의 측근이 되었다.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호세프는 2003년에 자원부 장관으로 재직하였고 2005년에 정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재직 시절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브라질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추진력 있고 유능한 관료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장관 재임 경험이 정작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는 도움이 안 되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는 브라질 정치계에서 지도자는 고도의 갈등 조율 능력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정치게임에서 자유로운 장관직에서는 그런 조율능력을 갈고 닦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호세프는 지방행정처에서 일했을 때와 달리 중앙정부에서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재선 이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재정지출 축소 등을 감행하면서 사실상 국민과 여야당을 포함한 다수의 세력들이 호세프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사실 경제 하락 국면에서 누군가는 감당했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을 하려한 것이지만 정무 감각의 부족으로 룰라 전 대통령과 달리 다른 정치인들과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결국 파국까지 가게 된 것. 실제로 전임인 룰라는 의회 정치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호세프는 원내에 입성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호세프의 역량 부족 문제를 떠나, 그녀의 탄핵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행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패 스캔들 수사로 연립여당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하자, 평소에 호세프에게 불만을 가졌던 의원들이 그녀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 탄핵을 주도한 인물인 쿠냐 전 하원의장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처하자 호세프와 노동자당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연정에서 탈퇴하고 그 동안 쌓아온 정재계 및 언론계의 인맥들을 총동원해서 하원 탄핵안을 통과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